''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Ephesians 5:9)

원천UBF 김성진.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모세는 스스로 히브리 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장성하여 어른이 된 후에 히브리 사람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다가 어떤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분노했습니다.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 애굽 사람을 쳐서 죽였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에 대한 목자의 마음이 있었지만 그 방법은 잘못되었습니다. 스스로도 양심에 떳떳하지 못했으므로 시체를 모래 속에 감추어야 했습니다.

  모세가 감추고 싶었던 범죄는 그 이튿날 바로 드러났습니다. 두 히브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모세가 말리자 잘못한 히브리 사람이 모세에게 따져 대답하기를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마도 죽이려느냐"(2:14) 하고 대답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범죄가 드러난 것을 알고는 바로의 낯을 피해 얼른 애굽 밖으로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별로 권세 있는 왕자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노예 히브리인도 대들고 애굽 사람 하나 죽였다고 바로의 낯을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모세가 자기 혈기대로 애굽 사람을 죽임으로써 히브리 사람을 돕고자 할 때 그 도움이 양들에게 영접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모세에게 이르기를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2:14) 하며 모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사람의 말이 맞습니다. 모세는 아직 다스리는 자가 아니요 재판관이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될 약속을 가지고 있다 해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 자기가 이루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악한 일로 인해 미디안으로 몰려난 것 같은 모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합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정처 없이 머무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때에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이 우물에 와서 양 떼에게 물을 먹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와서 여자들을 쫓아내려 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 양 떼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또 그의 딸 십보라와 모세가 결혼하도록 했습니다. 이로써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거지가 되는 것이 아니고 가난하지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합당한 광야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이 끝나면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2:14) 하는 히브리 사람의 질문에 정식으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셨다' 하고 말입니다.

  사람을 돕는데도 무작정 돕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모세가 당한 일은 운이 나빠서 자기 악행이 발각되어서 겪는 일이 아닙니다. 하필 히브리 사람으로 태어나 애굽의 왕자가 되어서도 권세가 없어서 도망다녀야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그 백성을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세우시기 위해 모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훈련하신 것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마음으로 양들 섬기려 하니 어려움이 있습니다. 힘들게 하는 사람은 힘들어서 멀어지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영접되지 않는 사람도 센터에서는 영접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모임에서 인간적인 질서를 세우는 것보다 영적인 질서를 먼저 세우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훈련 되어서 양들을 이해하고 섬길 수 있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받는 고난은 그러한 훈련의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이 그냥 고생이 아니고 미래가 있는 훈련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받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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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히브리 갓난 아기 중에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이 떨어진 후에 히브리인 중의 레위인의 가족 중에서 아들이 생겼습니다. 바로의 명령에 의하면 이 아들을 죽여야 했으나 부부는 아들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겼다고 했습니다. 잘 생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처음 난 아기를 보면 잘 생겨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람은 잘 생겼다는 의미를 신앙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자기 양심으로는 아기를 포기할 수 없었고 양심대로 행하여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양심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석 달을 숨겼으나 환경이 바뀌어 아기를 계속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기 울음 소리가 나날이 커졌는지 단속이 나날이 심해졌는지.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집 밖으로 빼내어서라도 살리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석 달의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기가 본문의 갈대 상자 여행을 견딜 수 있는 몸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아기 어머니는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해 물이 새지 않게 하고는 아기를 담아서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이 아파 돌아가고 아기의 누나는 어떻게 되는지 알려고 멀리 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애굽의 공주가 나일 강 가를 산책하다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공주는 그가 히브리 아기인것을 알고도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 살리고자 했습니다. 이 때 멀리서 바라보던 모세의 누나가 재빨리 다가가 담대하게 공주에게 제안하여 히브리 유모를 붙이자고 했습니다. 그 히브리 유모는 아기의 친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아기는 살아남아 왕자로 자라고 이름은 모세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겪은 어려움이 어렸을 때부터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위기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살아남고 성장하고 예비되었습니다. 그는 왕의 인종차별적이고 이기적인 정책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어머니가 그를 석 달이나 숨겼습니다. 갈대 상자는 삼개월 된 아기가 담겨 있기에는 너무 연약하고 불편하고 위험합니다. 모세가 갈대 상자 안에서 만 하루라도 있는다면 외부의 어떤 해를 받든지 아니면 스스로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누나가 계속해서왜 지켜보고 있을 만한 짧은 시간에 하나님이 애굽의 공주를 그 길로 보내시니 갈대상자로도 모세가 지킴 받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또 애굽의 공주가 히브리 사람이라고 아기를 무시하지 않고 불쌍히 여겨서 데리고 간 것도 하나님이 그 마음에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모세는 자기 친어머니의 보살핌 아래서 자랐으며 애굽 왕가의 교육을 받고 그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왜 권세 있는 부잣집 애굽인의 집이 아니고 가난하고 약한 히브리 사람의 집에서 태어났는지, 왜 애굽 왕이 히브리 남자 아기를 다 죽이라고 한 시대에 태어났는지, 이런 것에 불평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더 유익한 일입니다.

  세상의 죄의 세력 앞에서, 어려운 환경 앞에서, 사람은 갈대 상자 안에 있는 아기와 같습니다. 석 달 된 아기와 같은 자신이 겨우 갈대 상자 정도의 보호를 받는 것을 보고 두려워할 때, 죄와 타협하고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본모습이 되기 쉽습니다. 말씀과 기도 생활 약간이 갈대 상자와 같이 약해서 세상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겨우 굶지 않을 정도로만 주시는 물질은 너무 적어서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사명보다 당장 돈 버는 일을 어떻게 먼저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방패의 겉모습이 갈대 상자와 같은 것을 보고 두려움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있으면 스러지지 않는가. 안심이 안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영적 생활은 스스로 하려고 하지 않고 센터에서 무슨 특별한 프로그램이라도 있어서 영적 생활을 도와주면 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다달이 나오는 장학금이 날짜를 어길 때마다 형편이 어려워지고 마음이 불안해지니 무슨 복권이라도 하나 터져야 든든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볼 때 갈대로 만든 상자라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충분한 방패가 됩니다.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고 모든 환경 가운데 찬송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움을 받는 데에는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갈대 상자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충분한 도움을 주시는 것을 생각하면 제가 감사하고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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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벗어나 광야에 나아가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전하는 책입니다. 출애굽기의 첫 배경은 야곱과 요셉과 그 세대의 사람들이 모두 죽고 이스라엘 자손이 생육하고 번성한 후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 사람과 비교하여 많아지므로 애굽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졌고 이스라엘 자손의 수와 힘이 더 많아지기 전에 그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했습니다. 애굽 왕은 이것을 두려워하여 히브리 산파들에게 그들이 받는 아기가 아들일 때마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애굽 왕보다 더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애굽 왕의 명령이 부딪칠 때 불의한 애굽 왕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랬을 때 산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수만 많고 권력도 없고 재물도 없었을 텐데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매우 강해졌다고 기록합니다. 수가 많다고만 해서 강해진 것은 아니고 히브리 사람들의 불어나는 숫자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강하여지고 남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인이 되고, 또 애굽에서 종으로 살다 죽는 것이 아니라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히브리 사람들을 바라보고 구체적인 약속을 주셨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부분적인 성취의 시작입니다. 완전한 성취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의 애굽에 매여 있던 많은 영적인 유대인들이 해방되어 주님 안에서 자유를 찾음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히브리인들의 환경이 아주 어렵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그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 환경도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캠퍼스에서 만난 양은 마음이 변했는지 원래 마음이 없었는지 성경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꿉니다.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은 도대체 언제 되는 건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제 눈에 보이는 것이 적어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은 많습니다. 많은 일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저에게 있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있는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고 믿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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