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해서 퍼오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카페 가입도 안 되고 해서 별 수 없이... 원저자께서 다음과 같은 preface를 달아놓으셔다.: 아래 추천 책들은 그간 제가 본 책들 중에서 제 마음에 든 것이지 좋다 나쁘다의 의미는 없습니다. 먼저 제가 Cross-section과 Panel Data를 주관심으로 하기 때문에 시계열관련 STATA책은 잘 모릅니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으로 분류된다. 본래 경제학은 정치학에 예속되어 있었다고 무방하다, 그러다가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경제 특유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아마도 Alfred Marshall을 전후로 해서 '경제학'이라는 독립적인 학문 명칭을 갖게 된 것 같다. 지금은 방법론적으로 정치학과 완전히 독립적이며 오히려 정치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경제학은 문과적 학문이라 이과인이 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봄직 하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물론 경제학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적인 직관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을 조금 덜 배웠다고 해서 아주 나중에나 있을 - 그리고 보통의 경제학 전공자는 하지 않게 될 - 경제학 '연구'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수학적 기초가 튼튼할수록 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대 경제학은 수학과 아주 많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격이 비쌀수록 사고 파는 양이 줄어든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사실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이렇게 가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수학적으로 쓰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dq/dp < 0, where q: quantity, p: price 예를 들어, 시장을 조사한 결과 p=1-q 임이 밝혀졌다면 위 가정은 참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이용해 좀 더 큰 부분을 설명할 수도 있다. 가령, 기업은 어떻게 이윤을 극대화할까? 이것은 전형적인 미분의 문제이다. 기업의 이윤은 '판매수량*가격'인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위 식에서, '판매수량*가격'=q*p=(1-p)p, 위 식을 미분하여 0이 나오는점을 구하면 기업이윤이 극대화 되는 점인데 그 점은 0.5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0.5의 가격을 정할 것이다.. 이런 결론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훨씬 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만 생략하도록 한다.
경제학에는 크게 네 가지 분과가 있다고 하겠다.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경제학설사인데,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을 묶어 이론경제학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위에서 든 예는 미시경제학의 아주 쉬운 예이다. 미시경제학은 소비자, 기업, 시장 등의 문제를 다룬다. 거시경제학은 국가의 경제, 예를 들어 환율과 이자율과 같은 것을 다룬다. 계량경제학은 통계적인 기법을 써서 실제 데이터를 이용해 현실경제를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학설사는 경제학 이론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론 경제학에서는 수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계량경제학은 통계학을 도구로 하기 때문에 역시 수학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학설사를 연구하는 데에는 수학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여러 이론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수학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학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수학이 쓰이는 분야는 이론경제학과 계량경제학 정도에 국한될 것이다.(이것은 만약 계량경제학이 개설되는 학부에 다니고 있어야 해당이 되는 얘기겠지만..)
주류 경제학은 물리학적인 유추를 많이 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가격이 올라가면 판매량이 줄어들고, 그 반대는 반대로 되고, 이런 식이다. (뉴턴)물리학에서도,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질량이나 가속도가 올라가면 힘이 증가한다고 보는 것과 비슷한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학문적 목적은 전혀 다르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이기 때문에, 때로는 정책적인 제안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문제를 파악해서 해결하는 역할을 필연적으로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과대학생으로서 경제학을 공부하고자 할 때에는 그 목적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한다. 혹여라도 경제학을 공부하는 쪽으로 진로를 변경할 수도 있다면 당연히 경제학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 진출시 용이함을 얻고자 한다면 경제학보다는 경영학이 더 맞을 수도 있다.(물론 경영학이야 말로 이과대학생으로서 하기 힘든 공부가 될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혹은 본인의 전공에 집중하고 도전해서 승리하는 것이 더 옳은 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이과대학생으로서 경제학을 공부하려면 순수하게 다른 학문을 탐구해 보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든지, 아니면 경제학으로의 전공변경이나 대학원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 한 두 과목 정도 경제학 전공 과목 중 쉬운 것으로 들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자신의 취미와 적성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1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13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15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니이다 하니 16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24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Individualism - '개인주의'라는 단어는 흔히 이기주의와도 혼동된다. 먼저 이기주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본성대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입장'을 말한다. 그렇다면 개인주의의 정의는 무엇일까? 이 단어의 정의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다 언급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대개는, 집단보다 개인이 먼저 존재한다는 사상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마을이 되고 국가가 되는 것이지, 국가가 먼저 있고 그들이 통치하기 때문에 국민이 있다는 식의 해석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 개인주의가 이념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주의적인 시각에서 취할 장점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고, 이것은 신앙적으로도 그렇다.
1.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주의라는 말에 대한 오해를 많이 안고 있다. 누군가를 향해 '개인주의적이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흔히 그것을 그 사람에 대한 비판의 말로 알아듣는다. 개인주의적이라는 말은, 공동체를 모르고, 혼자서만 놀고, 자기 편한대로 하며 남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나 쓴다고 생각하기 쉽다. 여기서 명백히 말하자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전혀 상관이 없다. 개인주의는 이타주의의 상대어가 아니다. 개인주의의 상대어는 집단주의나 전체주의라야 맞을 것이다.
2. 왜 '그리스도인의 개인주의'인가?
필자는 개인주의에 대해서, '집단보다 개인이 먼저 존재한다는 사상'이라고 전술하였다. 그러면 이 관점은 기독인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교회보다 성도가 먼저 존재하는가? 즉,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먼저 만드시고 그를 위해 교회를 지으셨는지, 혹은 교회를 먼저 만드시고 그 안에서 성도가 살도록 하셨는지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교회'를 가장 넓은 의미에서 파악한다면, 이 문제의 답은 논의의 여지가 없이 전자이다. 교회를 모임 이전에 '관계'의 관점에서 형성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은 성도가 있기 전에 먼저 그를 위해 교회를 만드신 것이 틀림 없다. 아담이 만들어진 것과 동시에 혹은 그것보다 이전에,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계획과 실천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개인주의에 대해 의논하는 것은, 현재 보이는 모습의 교회집단과 성도간의 관계에서 성도의 태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에서의 각 성도의 제멋대로인 태도에 대해 정당화를 하려는 시도가 결코 아니다. 필자는 일부 신자들에게는 사어(死語 ; 거의 쓰지 않아 없어진 말)처럼 되어 버린 '개인신앙'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교회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 생각하는 것이지만, 공동체 혹은 집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전통이 한국교회 발전에 영향을 준 것은 누가 보더라도 엄연한 사실이다. 교회를 위한 헌신의 가치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던 집단 중심의 가치체계와도 관련이 있다. '교회가 가는 곳이면 나도 간다'는 태도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이렇듯 '모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온 사회와 더불어 교회 또한 발전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면서 우리에게 공동체 중심 문화의 아름다운 미덕은 그림자만 남게 되고, 이기적인 모습이 들어와 혼재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교회가 가는 곳마다 내가 가는 것은 율법주의적인 것이다'라는 핑계로, 또 '교회가 가지 않는 곳에 내가 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핑계로 때로는 의무를 저버리거나 혹은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혹은 '나 하나가 어찌하든 교회와 하나님의 일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소위 easy-going spirit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올바른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형성한다면 오히려 이런 이기주의와는 멀어져야 정상이다.
3. 그리스도인의 개인주의
사실, 교회 집단의 움직임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신자 개개인을 돕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신자 한 사람은 이 귀한 뜻을 자주 잊어버린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99마리를 잠시 들판에 두지 않겠느냐?' 하고 물으신 이야기(마 18:12-14)는, 한 사람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한 사람씩 모인 것이 100명이 되지 않고서는 100명의 큰 모임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 한 사람이 잘 하지 않으면 아무도 잘 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이 큰 모임도 잘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모임이 무너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의 움직임을 무관심하게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 모임은 무엇을 하고 있고, 자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또 교회가 요구하지 않는 일이라고 해서 자신에게 무제한적인 나태함의 권리가 주어진 것도 아니다. 신앙생활은 교회에서의 사회생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담임목사라고 해도 감히 한 사람의 신앙생활을 함부로 판단할 위치에 있지 못하고 단지 성도를 도울 뿐이다. 자신이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제대로 되기 힘들다. 사역도 교회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시키셔서 하는 일이다. 자신이 자립적으로 기도하고 찾지 않으면, 올바른 헌신은 없고 고생길만 열린 것이니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러므로 교회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이 교회와 나를 위해 나에게 시키는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 올바르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교회가 하는 일이라고 성도가 무조건 모든 일을 따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임 중에서 특정한 한 사람이 모든 일을 잘 한다고 하여도, 그가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성장할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옳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헌신의 기회를 주는 것이 상호간에 유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각자가 맡은 일을 충실히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필자 또한 능력이 많은 자가 아니라 교회에서는 세움을 입고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결단이 없이 '윗사람이 시키니까 한다'는 태도 - 겉으로 보기에는 맞는 말일지라도 - 를 가지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또, Individualism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사람이 남이 하는 일을 시기 한다. 청소하는 사람은 단 위에 서는 사람이 부럽고, 단 위에 서는 사람은 찬양인도자가 멋있어 보이니 그 나름대로 부럽다. 찬양인도자는 또 그 나름의 이유대로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러움'을 갖는 것은 사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죄와 결탁하여 시기가 되고, 성도의 마음 안에 갈등이 생긴다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교회가 마치 온 몸이 각 마디와 각 지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듯 하다고 말씀한다.(엡 4:11-16). 남이 하는 일을 시기하는 것은 자기가 맡은 헌신에 대한 감사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드리는 헌신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 작아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든 것이 아주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창 1:31).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성경은 당연히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소통할 것을 요구한다. 신약은 당연하고,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은 이스라엘 역사책으로만 파악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소통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편을 보면 얼마나 많은 개인적인 기도제목과 찬양제목이 나타나는지, 일일히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이다. 또 필자는 최근에 욥기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욥의 개인신앙 발전'인 것을 발견했다.(욥 42:5) 아마 필자가 아직 알지 못하거나 지금 떠올리지 못한 많은 예가 더 있을 것이다.
4. 마치는 말
필자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피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율법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것'을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개인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주의는, 교회집단과 사람의 눈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홀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신 바이며,(막 1:35) 우리에게 가르치신 바이다.(마 6:6)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참고가 될 수는 있어도 기준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옆 사람과 아무리 친해도 결론은 예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 21:21,22).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행하든지, 내가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주님을 따르는 한 사람이 있어야 교회도 있는 것이다.
목사나 신실한 신도들이 누군가에게 있어서 본받을 몫이 될 수는 있겠으나 그의 나아갈 길이나 신앙에 있어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될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하느님께서 임하시는 곳이고 그곳은 어디에 위치하건 하느님과 소통하려는 사람의 마음에 깃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순위에 '스친소'와 '스친소 이윤열'이 동시에 떴다. 평소에 이윤열은 알아도 스친소는 몰랐던 필자는 호기심에 검색어 목록을 클릭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친소에 대한 사전지식을 갖게 된 후 검색하던 중 위의 글을 읽게 되었다.
'연애'는 어떤 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낭만과 꿈과 희망을 주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나이든 사람보다는 어린 사람에게 어필하는 것이 연애의 이미지이다.
최근 어느 커피 광고는 '월요일이 귀신보다 더 무섭다'는 식의 리딩을 보여주는데, 이에 대해 혹자는 '월요일에는 꽃남이 있어서 무섭지 않다'고 반론(물론 반은 장난이었겠지만 -_-)을 펼치기도 하였다.(;;) 연애심리와 연애감정을 자극하고 연애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이다.(물론 드라마 시청자가 모두 이런 환상에 의한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링크된 본문은 이에 대해 다음의 대답을 던진다. : "인류 최후의 낭만적 영역이자 현실의 유일한 탈출구처럼 제시되는 연애시장이야말로 피튀기는 무한 서바이벌 게임의 경연장이라는 것을 매칭 프로들은 잘 보여줍니다." 더불어서 대중에게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결혼정보회사 회원가입 기준은 많은 사람들에게 연애를 위해 좀 더 노력해야만 할 것 같은 위기의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기준에 의해 '연애소수자'가 되고, '한 번 안 팔리면 영원히 안 팔리는' 시장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키 160cm가 넘지 않는 여성은 결혼정보업체의 기준에서 굉장한 손해를 본다고 하지만, 필자가 알고 있는 여성들 중에서는 키가 작으면서도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남성의 관점에서 만들어지는 편협하고 왜곡된 '여성의 이상적 이미지'가 은연중에 여성들에게 일종의 열등감과 낭만주의적 환상까지 심어주는 것 같다.(물론, and vice versa.) 그러나 이러한 환상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준에 의하면, 대부분의 인류는 자기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이성과 결혼한다는 것이 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는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 또 남에 대해서 사회가 주는 기준만이 아니라 자신이 신념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한 때이다. 더불어 이런 목소리가 사회적 기준에 덜 부합하는 절대다수의 '연애소수자'의 목소리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보직인사에서 이재용 전무는 최고고객책임자(CCO)직을 내놓고 당분간 뚜렷한 직책 없이 중국·인도·러시아 등 신흥시장 지역을 돌며 시장 개척업무를 맡기로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전무가 마케팅 실무 경험이 없으니까 현장에서 하나씩 쌓아올리겠다는 뜻”이라며 “먼저 중국으로 가고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필요로 하는 지역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도 “이 전무의 직책 사임은 애초부터 도피성이나 징계성의 의미가 아니었다”며 “삼성 특검 사태로 경영수업 기간이 좀더 길어지는 셈인데, 앞으로 전망이 밝은 큰 국외시장에서 좀더 공부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 해 동안 경영수업 기간에 능력을 검증받아 최대한 정당성을 쌓은 뒤 승계 수순에 들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월 이 전무가 맡으며 신설됐던 ‘최고고객책임자’ 자리는 후임 없이 이번 인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결국 이 전무를 위한 자리였다는 지적에 대해 한 관계자는 “국외 대형 바이어와 협력관계를 맺는 그 자리의 적임자가 이 전무였다”며 “앞으로 각 사업 총괄에서 최고고객책임자가 구축했던 데이터와 성과를 넘겨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무는 현재 삼성전자와 소니의 합작법인인 에스엘시디의 이사직도 맡고 있는데 조만간 내부 절차를 거쳐 이 직책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무가 마케팅 실무 경험이 없으니까 현장에서 하나씩 쌓아올리겠다는 뜻 : 실적이 없어서 아무리 이씨 집안 사람한테라도 큰 회사 사장 자리 주기는 눈치가 보여서 아직 좀 힘드니까..
이 전무의 직책 사임은 애초부터 도피성이나 징계성의 의미가 아니었다 : 애초에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렇다는 말은 차마 언론에는 흘릴 수 없으니까..
앞으로 전망이 밝은 큰 국외시장에서 좀더 공부하겠다는 것 : 어차피 누가 가도 실적을 쌓을 수 있을 만한 곳에 가서 '자기 책임 하에' 물건 많이 팔고 마치 자기 능력으로 성공한 척 해서 한국에 돌아올 때 우두머리로 돌아오겠다..
삼성은 국내 기준으로 엄청난 거대 기업이다. 이사회에서도, 사내에서도, 소비자들에게도 명분을 얻기 위해서 이런 작업이 필요한 게 아닐까?
회사는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그 대가로 노동자는 임금을 받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는 효용을 얻고 이 모든 기준이 가격에 의해서만 결정 되어야 돈 있는 사람도 돈 없는 사람도 '가능한 최대로' 잘 사는 게 되는 것인데.(유토피아는 아닙니다.) 회사가 이씨 집안의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달리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건 모두가 손해보고 단지 이재용과 그의 끈끈한 인연들만 이익을 보는 거래가 아닌가 한다. 실제로 '경영 수업'이라는 것은 지도자 없이 실험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삼성이 가지고 있는 힘을 발휘해서 시장 경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자본주의적 이상향의 논리에 맞는 것인가?
지배구조의 정점을 달리는 주주가 스스로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우리 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갖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게 아닌가 한다. 물론 나는 내 해석이 틀렸기를 바란다.
저는 대한의사협회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우리 나라에 광우병 걸린 소가 없는 것은 광우병 조사를 안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소는 '초'비싼 한우들 뿐이라는군요(부자들만 먹는... 백화점에서 직접 키우는 소.. 수십만원짜리..)
우리가 보통 아는 '한우'는,... 미국에서 태어난 소를 우리 나라 들여와서 한 5년 키우면 그걸 국내산 소라고 부르는데.. 한우나 국내산 소나.. 소비자가 구별을 할 수 있도록 홍보를 잘 하지도 않고 소비자는 이걸 구별하기 위해 노력할 의지도 없다는 것이죠...
최근 한미 간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협상이 타결된 것과 관련하여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의학적 자료에 근거하여 국민들에게 ‘사람광우병’에 대한 학술적 견해를 밝힙니다.
현재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사항인 광우병에 대한 예방, 조기발견 및 확산 방지를 위하여 정부와 사육농가 및 학계의 지속적인 감시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꼭 지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사람광우병(vCJD)과 소광우병(BSE), 그리고 크로이츠펠트-야곱병(CJD)에 대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각종 주장들이 인터넷과 여러 매체들에 떠돌면서 광우병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의학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1. 소광우병(BSE)은 1986년 영국에서 처음 보고된 소의 병으로 변형프리온단백질에 오염된 조직이나 골육분 첨가사료를 통해 발생하는 동물의 퇴행성 신경질환입니다.
2. 프리온(prion)단백질에 의한 질환은 소뿐만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여러 포유동물에서 발생합니다. 사람에서 발병하는 대표적 프리온병은 크로이츠펠트-야곱병(CJD)으로, 우리나라에도 보고사례가 있으며 이것은 ‘사람광우병’(vCJD)은 아닙니다.
3. 변형크로이츠펠트-야곱병(variant Creutzfelt-Jacob disease, vCJD)은 사람이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음으로써 발병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이 사람의 병인 ‘사람광우병’(vCJD)입니다.
4. ‘사람광우병’(vCJD)은 2008년 4월까지 전세계적으로 207례가 보고 되었고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보고된 사례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여러 가지에 대하여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합니다.
질문 1. 소광우병(Bovine spongix-form encephalopathy, BSE)은 어떤 병입니까?
소광우병은 주로 성장된 소에서 나타나는 신경질환으로 ‘프리온(prion)'이라는 단백질이 그 원인입니다. 소광우병은 변형프리온단백질에 오염된 조직이나 오염된 육골분 첨가 사료를 먹음으로써 발생됩니다. 1986년 영국에서 처음 소광우병에 걸린 소가 보고된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많은 소광우병 사례가 보고되었으며, 미국, 일본에서도 발생이 보고된 바 있습니다.
질문 2. 크로이츠펠트-야곱병(Creutzfelt-Jacob disease, CJD)은 어떤 병입니까?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대개 50대 후반 성인에게서 발생합니다. 질병의 초기에는 자기 무시, 무감동, 안절부절 등의 치매증세를 보이며 쉽게 피로하거나, 과다수면이나 불면의 수면 장애와 지남력 상실이나 다른 고위 대뇌기능 이상, 간대성 근경련이 나타납니다. 그 외 소뇌 기능장애나 뇌신경마비가 오게 됩니다. 대개의 환자는 3~6개월 내에 사망하며, 5~10%의 환자는 2년 이상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질문 3. ‘사람광우병’(variant Creutzfelt-Jacob disease, vCJD)은 어떤 병입니까?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음으로써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퇴행성신경질환입니다. ‘사람광우병’에 걸린 환자와 접촉하여 전파되지 않으며, 공기를 통하여서도 전파되지 않습니다. 주로 20대, 30대의 사람에게 발병하며 정신착란과 간대성 근경련, 운동실조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치매가 진행되며, 대개 2년 이내에 사망합니다. ‘사람광우병’은 1996년 영국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2000년에 30명 정도까지 증가하였다가 그 이후 연간 10명 내지 20명의 발생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광우병’의 발생보고는 없습니다.
질문 4. 소광우병에 걸린 쇠고기의 섭취와 연관되어 사람에게 발병하는 ‘사람광우병’(vCJD)의 위험성은 어떻습니까?
사람이 소광우병에 걸리지 않은 쇠고기 등을 먹을 경우에는 ‘사람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없습니다. 소광우병이 30개월 령 이상의 소에서 주로 발병사례가 보고되었다는 점에서 소의 신체조직에서 ‘특정위험부위’(specified risk material, SRM)를 제거한 30개월 령 미만의 소를 먹을 경우에는 사람에게 ‘사람광우병’이 발병할 위험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질문 5. 소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하면 ‘사람광우병’(vCJD)에 100% 걸립니까?
소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사람광우병’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소광우병은 소의 병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잠복기가 수십 년 이상으로 길 수 있기 때문에 소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음으로써 ‘사람광우병’이 발생할 위험성을 판단하기는 아직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정위험부위’(SRM)란 소광우병(BSE)의 원인체인 프리온이 주로 축적되는 신체부위로 소의 어린 시절에는 편도와 소장말단부이며, 30개월 령 이상이 되면 뇌·눈·척수 등에도 축적되어 뇌·눈·머리뼈·척수·척주·편도·소장말단부 등 7개 부위를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특정위험부위’(SRM)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질문 7. 우리나라 사람이 ‘사람광우병’(vCJD)에 더 취약합니까?
한국인의 프리온 유전자 중 메치오닌/메치오닌(MM)형이 서양인에 비하여 빈번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보고된 ‘사람광우병’ 환자가 메치오닌/메치오닌(MM)형이 많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집단유전학연구가 수행되어, 상대비교위험도(relative odd ratio)평가 등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한국인이 사람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결론은 낼 수가 없습니다.
질문 8. 국내에서의 크로이츠펠트-야곱병(CJD)및 ‘사람광우병’(vCJD) 환자의 발생현황은 어떠합니까?
국내에서는 크로이츠펠트-야곱병(CJD)의 보고 사례가 있습니다. 2001년부터 크로이츠펠트-야곱병(CJD)에 관련하여 신경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중심으로 표본감시를 운영한 이후 2001년 5명, 2002년 9명, 2003년 19명, 2004년 14명, 2005년 15명, 2006년 20명, 2007년 2월 현재 4명으로 총 81명이 신고되었습니다. 그러나 학계의 전문가들은 국내에 연 30명 내지 50명 정도의 환자가 발병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크로이츠펠트-야곱병(CJD)으로 확진 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람광우병’의 보고 사례는 없습니다.
질문 9. ‘사람광우병’(vCJD)의 치료법은 무엇입니까?
‘사람광우병’에 대한 치료법은 현재 없습니다. 현재까지 ‘사람광우병’으로 밝혀진 환자는 모두 사망하였거나 치료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질문 10. ‘사람광우병’(vCJD)의 예방대책은 무엇입니까?
소광우병과 ‘사람광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과 보다 확고한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소광우병과 ‘사람광우병’ 환자가 발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장, 뼈 등도 식재료로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식습관을 고려하면 향후 ‘사람광우병’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사람광우병’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내 소광우병 발생을 예방하고, 쇠고기에 대한 완전한 검역 등 관리 시스템을 수립해야 하며, 국내의 사람 및 동물들에 발생하는 모든 프리온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감시 및 추적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Bud
2009/09/15 16:25 Delete Reply Permalink
목사나 신실한 신도들이 누군가에게 있어서 본받을 몫이 될 수는 있겠으나 그의 나아갈 길이나 신앙에 있어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될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하느님께서 임하시는 곳이고 그곳은 어디에 위치하건 하느님과 소통하려는 사람의 마음에 깃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