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본문의 요절은 빌닷의 질문입니다. 빌닷은 욥의 태도가 옳지 않다고 정죄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8:3). 그의 말이 멋있습니다. 그러나 빌닷이 말하는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정의와 공의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빌닷이 생각하는 세상적인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따라서는 굽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빌닷은 욥의 말이 옳지 않고 공의와 정의를 훼손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스데반과 초대 교회 성도들을 핍박한 사울과 같은 태도입니다. 빌닷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청결하고 정직한 자를 돌보시며 의로운 자의 처소를 평안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시작이 미약한 사람이라도 정직하면 나중이 창대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로 보았습니다. 빌닷은 이것을 역사를 통해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빌닷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빌닷은 아마 하나님의 심판과 축복이 모두 세상적인 것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지각으로 알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하나님의 축복을 말할 수 있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그런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빌닷의 말에 천국에 대한 약속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성이 없습니다. 단지 기계적인 원리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돌아간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빌닷과 같은 신앙관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을 배우는 첫걸음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는 없습니다.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은혜이지 규칙이 아닙니다. 율법은 복음을 영접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만 율법의 조문이 구원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심판자가 아니라 하늘의 심판자이시며 땅에서 심판과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은 또한 용서의 주님이기도 하십니다. 제가 저의 지각에서 알 수 있는 원리가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주권이 저의 생각보다 큰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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