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Ephesians 5:9)

원천UBF 김성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자 드디어 예수님이 자신의 길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까지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임 당하시고 세번째 날에 살아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육신으로는 역사적인 사실이고 영적으로는 고난과 영광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써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를 파하시고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스스로 이기실 뿐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거듭나고 예수님을 찬양하기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고난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가로막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16:22)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위대한 모습, 강력한 모습, 화려한 모습만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원했습니다. 겸손한 모습, 고난 받는 모습, 죄인으로 정죄받고 죽으시는 모습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사탄의 생각인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갖고 있던 사탄적인 생각은, '예수님을 따고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면 나도 인기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세상적 권위만 보여주면 교회원의 사기도 올라가고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교회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룩하면서 동시에 겸손하려면 때로 희생도 필요합니다. 신앙고백 때문에 술은 안 마시면서 사람들을 섬기고 친하게 지내려면 힘듭니다. 세상에서 온갖 일은 다 하고 주말에는 영적인 일을 하고 헌신하려면 쉬지 못하고 체력적으로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난 받고 영광 받으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제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고난 없이 영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고 사탄의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길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는 대표적인 부담스러운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죄인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부활의 영광을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명이 힘들다고 세상 사람처럼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이 신앙인인가 싶고 항상 스트레스 받고 불안과 염려에 떨고 웃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사명을 힘있게 감당하려고 투쟁하면 자기가 당한 세상적 조건이 어려워도 이것을 오히려 간증거리로 삼는 헌신된 자세가 있고 때로는 농담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담 주고 짐 지우시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천국의 권세와 부활의 영광을 주시려는 귀한 초대의 메시지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저는 낮잠 자기를 좋아하고 빈둥거리기를 좋아합니다. 평일에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데 주말이 되면 쉬고 싶어서 이불 속에서 속으로 비명을 지릅니다. 그러나 사명을 섬기기 위해 가야 합니다. 특히 주일은 절대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하기 위한 내적 투쟁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결국은 센터에 가게 되지만, 자기 부인에 걸리는 몇분이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쉬는 것보다 사명을 섬기는 쪽을 택할 때 오히려 영혼에는 더 쉼이 되고 한 주를 살 힘을 얻습니다.

  자기 십자가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저의 죄의 십자가를 지셨으므로 저에게 남은 것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죄를 벗고 사명을 지면서도 이것을 무거워서 다 놓고 홀로 가겠다 하면 주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영광을 돌리지도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영광을 받으신 것을 볼 때 저도 동일한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이에 대하여 현재의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저에게는 매주 역사를 섬기고 매일 말씀과 기도를 드리는 십자가가 있고 학업의 십자가도 있습니다. 양이 생기면 양 섬기는 십자가가 추가되는데 세상적으로 무슨 기쁨이 있다고 이것을 지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주님이 기뻐하시고 상 주시는 것을 믿어야 겠습니다. 제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삶을 힘있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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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이 빌립보에 있는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셨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6:13). 이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세상이 예수님께 갖는 태도를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이 없지만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는 하는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종이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대답이 충분하다고 여기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렇다면 예수님을 오랫동안 따른 제자들의 대답을 알고 싶으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6:15).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제자 중 한 명인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발견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에 그치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입니다. 모든 선지자가 예언하고 증거하는 이가 바로 이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시지만 더 중요하게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은 인격과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대답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7). 한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십니다. 예수님을 귀한 분, 고상한 분, 선지자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지성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거듭나지 않았는데도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양들은 이 정도 수준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단계, 거듭나고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예수님이 사해주신 것을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양들 섬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로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예수님은 베드로를 축복하셔서 그 이름의 뜻을 반석이라고 하시고 그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사망과 사탄과 지옥의 권세가 베드로를 이기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정말로 반석처럼 단단한 사람이라서 그렇습니까? 사실 베드로의 이름의 사전적인 뜻은 반석보다는 돌멩이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베드로를 반석처럼 붙잡아주십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주님과 베드로의 관계성이 깨질 수 없게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 하나를 들으시고 그가 천국 열쇠를 가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땅에서 말씀을 전하고 천국 문을 열면 사람들이 천국을 배울 것이고, 베드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받은 은혜를 나누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천국 복음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는 것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말씀 전파를 위해 힘쓰는 것이나 또 나머지 헌신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것은 신앙 고백의 반석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지치고 힘이 듭니다. 예수님이 제 인생을 바꾸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일하는 것을 영접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좋지 억지로 하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 되고 맙니다. 제가 모든 일을 그리스도 되신 주님을 생각하고 그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동해야겠습니다. 제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저에게 권세 주시고 권세 발하기 원하시는 것을 믿고 따라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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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을 주의하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그들이 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했습니다. 표적은 단순히 신기한 일, 초자연적인 현상, 통계적으로 있기 힘든 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자기의 권세가 하늘에서 온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의심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표적을 보이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은 여태까지 보여주셨던 표적 중 아무것이나 다시 보여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이 표적을 구할 수밖에 없는 불신의 문제를 책망하셨습니다. 당시 사람은 아침이나 저녁 하늘을 보고 그 날이나 다음 날의 날씨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표적을 보고는 믿음을 가질 수 없어서 또 다른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에 따라 표적 보이시기를 거부한 것이지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는 보여주실 표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16:4). 요나는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회개하고 풀려난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은 사흘 동안 죽으심을 겪을 것이나 부활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만큼 확실한 표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악한 영향력에 물들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16:6). 그런데 제자들의 관심사는 예수님이 만드신 떡을 가져오지 않아 안타깝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영적인 문제를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물질적인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은 주님께서 얼마든지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같이 믿음이 없어 표적을 요구하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를 배울까 염려해야 합니다. 머리가 좋고 아는 것이 많은 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지성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 쓰일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는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주 생각하는데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전체에서는 상위에 속하는 능력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생각하는 능력도 있고 일 처리하는 능력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와 같이 있는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데에 익숙해지고 같은 방식으로 일 하는 데에 익숙해지는 것이 주님의 말씀 듣는 것보다 더 하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매일 일용할 양식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은 매일의 삶에서 세상보다 주님의 영향력을 받는 데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꾸준히 매일 영적인 삶을 삶으로써 세상 지성의 누룩을 주의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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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본문은 얼마 전의 오병이어 사건과 아주 유사한 칠병이어 사건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호숫가의 산에 앉으셨는데 많은 사람이 나아왔습니다. 그 중에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 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메시야가 하실 것으로 이사야의 글에 기록된 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실제적으로 이러한 표적을 보여주심으로써 무리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믿도록 도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병이 없어도 날마다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어려움을 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배고픔의 문제였습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 사람은 범죄하여 저주를 받아 땀흘려 경작해야만 땅의 소산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잘못이지만 예수님은 이것조차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들을 굶겨 보내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과 같이 무리를 앉히셨습니다. 이번에는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제자들을 통해 무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 이것을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참 은혜가 됩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성경을 통해 볼 때 사람이 받는 모든 고난은 사람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이 보기에도 뻔한 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도 정죄하시기보다 먼저 불쌍히 여기고 죄인이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양들 중에 죄의 모습이 너무 분명하여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양들도 불쌍히 여기십니다. 또 양들 중에 죄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고 자신도 잘 몰라 회개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 문제를 알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저의 안에도 게으름이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나 염려 되는 마음이 있습니다. 방학이라 쉬고 싶고 수양회만 끝나면 놀테다 싶기도 합니다. 사실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자신은 정죄하기 쉬운데 예수님은 불쌍히 여긴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저를 향한 마음도 제가 잘 알고 나아가 회개하고 문제를 고침 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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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대를 떠나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이 지방은 예나 지금이나 유대 지방에는 속하지 않은 이방 지역이었습니다. 여기서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와서 예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15:22).

  그런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견디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제자들은 계속 소리를 지르는 여자를 보고 예수님이 그를 보내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즉 여자의 소원을 들어 주고 가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15:24). 예수님은 언약이 있는 사람 외에 다른 사람에게 사명을 행하지는 않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기도했을 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 세상의 것만 구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특별한 것을 주실 수 없습니다.

  여자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 좌절할 수 있고 분노할 수 있었습니다. 욕을 하고 돌아설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했는데 듣지도 않다니!' 그러나 이 여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15:27). 여자의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도다"(15:28) 하고 칭찬하셨습니다. 그 때로부터 여자의 딸도 나았습니다.

  여자의 믿음이 어떤 점에서 큽니까? 여자의 말과 행동을 처음부터 볼 때, 첫째로 여자는 가나안 여자였으면서도 예수님께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으로 불렀습니다. 그가 성경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지만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발견한 것은 순전한 믿음의 역사입니다. 여자는 이방인이었지만 들은 것에 대해서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둘째로 여자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이러한 일을 하시는 분인 것도 알았습니다.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을 때 어머니로서 많은 것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 실패할 때 기댈 곳이 없습니다. 이 때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자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와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 중에서 부스러기만큼이라도 떨어지면 귀신이 쫓겨날 것을 믿었습니다. 여자는 다른 세상의 능력보다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사랑에 기댔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셋째로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을 인정했습니다. 자기를 비하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 말을 듣고 반발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고 인정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 말씀을 인정하기 않고 자기 말과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하기 쉽습니다. 말씀을 불순종하는 상황에서 핑계가 많습니다. 이 정도는 타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내가 더 잘 한다고 생각한다, 복음 안에서 자유롭다면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대에는 맞지 않는 말씀이다 등등 많은 생각을 하며 주님 말씀을 옳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보실 때 예수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서 '그래 그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이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15:28) 하셨습니다. 한 편으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한 편으로는 큰 믿음입니다. 제가 이러한 믿음이 없어서 여름 수양회가 되도록 양 한 명을 말씀으로 섬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매주마다 사명을 섬긴다고 하는데 믿음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러나 다시 큰 믿음을 가지고 도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칭찬하시고 마음에 있는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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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루살렘은 당시 유대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책잡고자 하여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그들이 트집을 잡은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15:2). 그들이 중시한 것은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어땠습니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15:3). 이것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 있는 큰 불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부모님을 섬기기를 게을리하면서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물질을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자기가 가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이야기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과 거리가 먼 당시 사람들의 신앙적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로 예수님은 그들의 음식규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먹는 것이 사람의 영혼을 더럽게 하지 않습니다. 정결예식이 사람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지 못합니다. 밖에서 들어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사람의 영혼을 바꾸지 못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람의 안에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 같은 것이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마음보다 겉모습과 형식에 집중하기 쉬운 것은 저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몇 명을 어떻게 했느냐, 몇 가지를 어떻게 했느냐, 이런 것을 기준으로 삼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그것보다 마음을 신경써야 합니다. 저의 마음에 어떤 것이 있는지, 지금 어떤 소원이 있는지, 들여다 보면 죄의 소원이 많을 때가 많습니다. 제가 회개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다가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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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님은 제자들로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홀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은 홀로 기도하시는 것으로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혼자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고, 굳이 아무도 없지 않더라도 때로 주님과의 관계성을 제일로 여기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탄 배에는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난 배가 바람과 물결 때문에 고난을 당했습니다. 육지에서 바람을 만난다면 안전하게 피할 수 있으나 배 위에서 고난을 당하니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반석이 아니고 배와도 비슷합니다. 세상 자체가 흔들리고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의지한다고 해서 이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밤 사경에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계시지 않아 자기들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직접 눈에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때에라도 주님은 언제나 모든 필요를 아시고 함께 계십니다. 주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실 때 제자들은 차마 그것이 예수님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유령인 줄 알고 놀라는 마음은 사라졌지만 물 위를 걸어 오시는 모습에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14:30). 베드로는 주님이 하신 놀라운 일을 자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태도를 관찰합니다. 베드로는 기도하였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는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베드로가 바람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무서워서 빠져 갔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고 싶었던 원대한 기도제목 대신에 좀 더 기초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14:30). 이 기도 또한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주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한 가지 책망받을 점이 무엇입니까? 그가 믿음이 작고 의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기로 했으면 그 길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에서 믿음이 빠지면 삶도 힘을 잃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믿음으로 산다고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 몇 가지를 내려 놓고 목자가 되고자 하고 있습니다. 군대 문제, 물질 문제가 제 앞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상황에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니 물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여러 가지 준비할 것이 많은데 대학원에서 센터에서 할 일이 많으니 시간이 부족할까 걱정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시작한 길은 믿음으로 계속하여 걸어야 합니다. 제가 세상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신 길에 대해서 믿음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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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따로 빈 들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수님이 늘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한 가지 특별한 일을 하셨습니까?

  저녁이 되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었으므로 제자들은 따라온 양들도 먹게 하고 자기들도 식사시간을 가지고자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4:16). 예수님의 명령은 지극히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가난한 제자들에게는 양들에게 줄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자기들의 한계를 말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14:17). 그러나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무시하지 않고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은 무리에게 주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습니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도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도 갖다 드리니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드릴 것이 오병이어 정도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주말 시간 외에 직접적으로 역사에 헌신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주말에 캠퍼스에 나아가면 양들이 별로 없고 또 다들 집에 가느라 바빠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에서도 예수님께 제가 가진 것을 갖다 드리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메시지를 준비할 때에도 있는 시간을 전부 메시지를 위해서만 쓸 수는 없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제 논문도 준비해야 되고 토익 시험도 봐야 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주님께 드릴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제가 오병이어밖에 없는 자신을 보고 작다고 여기지 않고 주님께 드릴 때 더 커질 것을 믿고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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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밭에 귀한 보화가 잔뜩 감춰진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그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려고 들 것입니다. 만약 무엇보다 중요한 진리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이 진리를 얻고자 할 것입니다. 여름수양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귀한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수양회비도 비싸고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름수양회에 가는 것은 보화가 감춰진 밭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수양회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또 천국은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습니다. 진주를 사고자 하는 상인이 한 명 있습니다. 이 상인의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주를 얻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진주가 어디 있는지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생에서 그토록 추구하던 진주를 얻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이 진주를 살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많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다 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다른 것을 다 팔아서도 이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생명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다른 것에 눈이 돌아갑니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도 많고 중요한 것도 많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회만 있으면 이 생명을 위해 모든 것을 팔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얻은 것은 제가 주님을 배우고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는 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기회가 있으면 과감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인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제가 주님과의 관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습니다. 그물을 걷고 보면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모든 물고기가 수확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립니다. 당시의 낚시를 생각해 보면, 내버려진 물고기가 다시 물 속에서 좋은 물고기가 될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물에 걸렸고 배에 올려졌다가 시간이 걸려 어부의 손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물고기의 목숨은 사라진 뒤일 것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런데 의인은 천국으로 가고 악인은 풀무 불에 던져집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곳간은 천국입니다. 천국의 제자된 사람은 천국에 있는 것을 꺼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이를 보고 감화되어 함께 천국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제가 가진 보화를 잘 닦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여건이 핑계가 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주님과의 관계성을 날마다 새롭게 하고 천국의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집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은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사명인으로서, 또 하나님의 아들로서 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만 보고 예수님을 따르거나 예수님을 비판하거나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발견해야 합니다.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십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깊이 발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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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예수님은 천국을 겨자씨 한 알에 비유하셨습니다. 겨자씨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13:32).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도 처음에는 작은 것으로 여겨지고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처음 말씀을 받을 때 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장하고 확장하여 처음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이 크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두운 마음에 빛 한 점으로 시작한 천국이 자라나서 온 마음을 예수님의 빛 가운데에 들어가게 합니다.

  또 예수님은 천국을 누룩에 비교하셨습니다.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갖다 넣으면 어떻게 됩니까? 가루가 전부 부풀어 오릅니다. 쓸 데 없었던 가루가 빵을 만들 수 있는 귀한 재료가 됩니다. 이와 같이 천국이 들어오면 일부 뿐만이 아니라 전체가 변화되어 가치있게 됩니다. 천국은 안팎으로 사람을 변화시켜 복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합니다.

  천국의 변화의 능력을 자신이 체험하여 삶이 많이 변화된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또 앞으로의 변화를 생각해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감사합니다. 천국에 대해서 믿는 마음을 가지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인 것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천국의 변화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이에 있으며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이번 여름 수양회에서 천국 복음의 역사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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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lim
    2010/07/25 05:21 Delete Reply Permalink

    hi! 이번 수양회에서 말씀 전하나요? ㅋㅋ 암튼 수양회가 천국의 기쁨이 가득한 잔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근데 성진 나 qual 떨어졌어요. 교수님께 아직 얘기 안드렸는데 곧 드릴려구요. ㅋ 아무튼 그동안 기도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기도중입니다. 곧 한국에서 뵙지요 ~ (12월에 들어갈 생각)

    1. Re: BlogIcon 믿음으로
      2010/07/26 17:29 Delete Permalink

      앗 그러셨군요

      저는 아침말씀을 전하게 됐어요 근데 각 부별로 아침 시간을 따로 가지기 때문에 아침말씀강사가 무지 많아요~~~ 그럼 12워레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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