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Ephesians 5:9)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제학전공 석사과정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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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8 [일용할 양식] 1월 18일 월요일 창세기 9:18-29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본문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방주에 들어간 바로 그 노아입니다. 성경은 노아를 향하여 의인으로 높이고 칭찬합니다. 그는 온 인류 중 유일하게 경건하여 구원을 얻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라고 해서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노아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노아의 실수를 세 아들이 목격했는데 그들의 행동은 서로 달랐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실수와 허물을 대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이후 물질 자립을 위해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포도 농사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포도 농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었으며 동시에 축복이었습니다. 포도 농사의 산출물은 하나님의 것이었으므로, 소득의 얼마를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리고 나머지도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소비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포도를 먹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가공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기술이 있다면 건포도도 만들 수 있고 포도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이든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일 수 있다면 그렇게 쓰이는 것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습니까?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9:20,21).

  본문의 노아는 하나님이 방주로 구원하신 바로 그 노아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이 주신 산출을 자기의 정욕을 위해 썼습니다. 그가 포도 열매로 만든 것은 포도주였습니다. 물론 포도주가 가지고 있는 장점도 있겠지만, 본문에서 드러나듯이 술은 사람을 쾌락의 종이 되게 만듭니다. 술을 마시는 문화가 우리 나라는 특히 심한데, 멀쩡한 정신으로는 교제할 수 없고 술을 마셔야만 교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쾌락 속의 교제를 원하는 것입니다. 술은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사람을 실수하게 만들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큰 적입니다. 비록 취하지 않더라도 술과 술자리에 의지하는 시간은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노아의 포도주도 육신의 쾌락을 위해 쓰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술을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습니다. 자기 집에서 벌거벗은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장성한 아들들과 그들의 온 가족이 함께 있는 집에서 대가족의 가장이 하기에 합당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의로운 사람이라도 본질적으로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이상 때로는 실수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러한 사람이라도 다 죽이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방주에 들어갈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을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죄인이고 부족한 자이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때마다 말씀 생활 멈추기를 잘 하고 세상의 재미를 찾아 나서기를 잘 하지만 주님의 피의 공로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나아가서 실수와 실패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회개하는 삶을 산다면,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2)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아의 실수와 허물을 목격한 자가 있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들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9:22,3). 본문에서 드러나듯이 세 아들의 처신은 달랐습니다.

  함은 자기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아버지의 허물을 보았을 때 아들은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자기 형제와 함께 아버지의 흉을 보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아버지의 허물을 가리고 아버지와 함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물론 자기 형제들도 사실을 알아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자신이 아버지의 허물에 대해 이해를 하고 용서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많으시지만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흉을 꼬투리 잡고 '내 부모는 부족하다' 하고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육신의 부모는 나름대로 완벽하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남들보다 나은 자녀를 길러내고자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센터의 목자님들도 완벽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죄인으로서 이를 정죄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남의 허물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고 흉을 볼 것이 아니라 먼저 그를 이해하고 덮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일어나자 자기가 행한 일과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세 아들에게 각기 합당한 축복을 주었습니다.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9:25-27).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아버지를 깎아내리는 데 사용했던 함은 저주를 받아 형제들의 종의 종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셈과 야벳은 하나님을 소유한 민족이 되고 가나안을 종으로 두게 되었습니다. 셈과 야벳은 주님의 구속역사를 가까이서 목격하는 민족으로 발전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일을 한 사람에게 합당한 축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결국에는 심판을 받게 하시는 공평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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