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Ephesians 5:9)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제학전공 석사과정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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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1 [일용할 양식] 12월 21일 목요일 창세기 12:1-9

너는 복이 될지라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아브람은 그 아버지 데라와 자기 형제들과 함께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브람의 고향은 당시에 가장 문명이 창대한 곳이었고 가장 부유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 우수하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람을 복 있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그의 고향과 가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2:1). 하나님은 부유한 고향과 인정이 많은 친척과 안정된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안정된 생활을 떠나는 것은 상당한 모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대신 보장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아브람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복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현대인 같으면 안정된 삶을 위해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고 학점을 관리하고 영어 점수를 올리지 않겠습니까? CPA, CFA, FRM 등, 이 중에 무엇을 해서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 애를 씁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면 복을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은 힘이 들고 쉼이 없습니다. 간신히 복을 한 조각 찾았다 싶으면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어떻습니까? "너는 복이 될지라" 하셨습니다. 복을 쫓아다니는 삶을 살 필요가 없이 자신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곳이 복이 있는 곳이요 내가 하는 일이 복이 있는 일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삶이 진정 주체적이고 의미있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람이 자기만을 위한 한 조각 복을 찾아 방황하는 인생을 살도록 두지 않으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3). 아브람이 새롭게 바라보게 된 소망은 자신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의 주권 안에서 영적인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조변석개하는 세상 속에서도 모든 시대를 통하여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신뢰할만합니다.

  아브람은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12:4). 아브람은 칠십오세나 되어 새 인생을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여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 소망을 들을 때 나이와 관계없이 청년의 영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자 말씀에 의지하여 먼 여행이라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새 힘을 얻을 것이라는 선지서의 말씀과 같습니다. 능력과 소망과 비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나이나 주변 환경이나 사람의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을 따라간 아브람에게는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12:6).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큰 민족과 창대한 이름을 약속하셨는데, 아브람이 도착한 곳은 남의 땅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생기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한 아브람을 도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이 보시는 장래 방향을 더 신뢰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하였습니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또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고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기서 아브람의 믿음을 배웁니다. 그가 바라본 것은 자기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자식이 없는 자기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당시로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자기 눈에 보이는 가나안 족속이 장애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보다 귀에 들리는 말씀을 신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들어간 가나안 땅은 갈대아 우르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바라보고 감사하며 제단을 쌓았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비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도 기껏해야 광야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복의 근원이 되고 큰 민족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센터 목자님들 보면 신앙 생활하면서 남들보다 손해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기 위해 남들이 다 걷는 세상의 넓은 길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려고,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실제적이 문제에서 자기 욕심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 때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 공부하고, 군대문제는 빨리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볼 때 이것이 손해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믿는 삶인 것을 보게 됩니다. 훈련을 받기 위해 삶의 실제적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그 자체로도 훈련이 되고 하나님의 언약 속에 더 깊이 거하는 삶이 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을 쪼개어 말씀과 기도와 전도에 쓰는 것은 예수님을 배우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제가 화려한 삶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바라보고, 제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이 보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데에 집중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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