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아브람은 86세에 이스마엘을 얻고 지금 99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자기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가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큰 소망과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17:1,2).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17:4).
이 말씀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모습과 그 소망이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의 지금 나이가 99세이지만 그에게 소망을 두시고 이루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완전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함을 사모하고 이를 향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을 두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이름이 창대한 복이 될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함입니다. 아브람이 잘나서가 아니고 아브람이 우연한 행운아라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언약대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에게 언약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17:5).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17:15,16). 더불어서 언약 백성의 징표로 할례를 받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17:17,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보다 자기 나이와 아내의 나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많이 도우셨지만 그것도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가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이 처한 상황과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조화입니다.
자신의 상식에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판단될 때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를 판단하는 사람이 되고 한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곧 무기력해지고 옛 열정을 잃어버리고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이 식습니다. 세상적인 사람이 되고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옛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다시 불신을 부르고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삶에 힘쓰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때라도 하나님은 언약을 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때는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듣고 웃을 정도로 믿음이 약해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을 믿는 믿음을 다시 확실히 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17:19).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바라보았으나 하나님은 이삭을 바라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때를 자기 마음대로 13년을 당기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가정에 분란만 가져왔던 과거가 있습니다. 이스마엘에게도 많은 축복이 약속되었으나 그는 영원한 언약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이삭을 주시고 그 언약을 이삭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벗어난 사람의 노력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데에 아무런 좋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언약 밖에서 이루어진 일은 언약 밖의 일일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상황과 조건을 생각하고 웃을 때에 하나님은 변함 없이 약속의 말씀을 주심으로 아브라함을 도우셨습니다. 이것은 답답한 것이 아닙니다. 고지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변함이 없기 때문에 들리는 말씀도 당연히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징표를 새롭게 하기 위해 말씀대로 자기와 이스마엘을 포함하여 집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믿음이 약해질 때에도 변함 없는 언약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믿음이 좋을 때도 있지만 안 좋을 때도 있습니다. 세상 근심과 염려가 있으면 자연히 불신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에라도 하나님의 언약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도록 부르셨고 한 사람의 목자가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자기 인생의 작은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장래 방향과 관련해서든지 현재 상황에서든지 조건이 안 좋게 보이는 때라도 변함 없는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해서 동일한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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