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재확인하고 주권신앙이 내면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적 성격과 하나님의 축복과 같은 외면적인 것에만 기대던 신앙이 발전하여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하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욥은 자신의 말로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42:2).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자기의 뛰어남을 자랑하는 욥의 태도와 크게 달라졌습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서 주님과의 관계성이 발전했습니다. 이전에는 귀로 듣기만 했으나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게 되자 욥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는 회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변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서 이만큼 성숙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욥을 야단치셨다고 해서 욥이 못난 사람이란 것은 아닙니다. 욥이 자기를 높이기보다 낮추기를 먼저 했을 때 하나님은 욥과 친구들 사이에 순서를 정하셨습니다. 엘리바스와 두 친구의 말이 욥의 말처럼 옳지 못한 것을 정하셨습니다. 자기 말의 옳고 그름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욥이 좀 교만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주장할 때에는 사람과 싸워야 했습니다. 옳은 말이라고 해서 자기 멋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 다 맞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 태도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면 도덕적으로 옳은 말, 종교적으로 옳은 말이 결국 스스로를 정죄하는 말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회개할 때 하나님이 욥의 주장을 대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공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다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변화된 욥을 기쁘게 받으셨고 그에게 이전 소유의 갑절을 주셨고 말년에 더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욥이 이전에 재산을 잃은 것은 그가 가난 가운데에서 고생하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고난 가운데에서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욥이 고난과 내적 투쟁과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회개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자 이를 위한 수단이었던 고난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성도는 일생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삽니다. 그러나 일생 완전한 삶을 이루지는 못하기 때문에 늘 고난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고난이 있는데 남들이 보기에 어떻든 자기가 받아들이기에는 다 어려움이 있는 고난들입니다. 이 고난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한 삶을 우리가 이룰 때 완전히 없어집니다. 부분적으로는 성장할 때마다 고난이 하나씩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성되기로는 제가 부활의 육체를 입는 약속의 날이 오면 고난이 완전히 없어집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이기 때문에 고난을 불평과 불만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가 죄인이고 부족하기 때문에 고난이 필요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생기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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