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Ephesians 5:9)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제학전공 석사과정 김성진.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본문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얻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가장 믿는 늙은 종에게 이 일을 부탁했습니다. 여기서 늙었다는 것은 나이 많이 힘이 없는 쓸모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오래 살아 경험과 연륜이 있는 성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삭의 아내를 택하는 일을 아브라함의 고향, 아브라함의 족속 중에서 택하도록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아들의 아내를 얻어 주는 일은 대충 마음에 맞는대로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절박하게 의지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배우자, 자기 며느리와 사위를 고를 때 무엇을 기대합니까? 첫째로 남자들은 외모를 본다고 합니다. 여자는 능력을 본다고 합니다. 아들과 딸을 결혼시키는 부모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능력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자기가 아는 유력한 친척 집의 딸을 원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대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계획을 듣고 말했습니다.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24:5). 이것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질문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24:6-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가 아들의 결혼을 핑계로 갈대아로 돌아간다면 거기에는 친척도 있고 형제도 있었습니다. 가나안 같은 황무지에 비하면 갈대아 땅에서 얻을 수 있는 풍요로움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이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나오는 큰 민족이었지 세상적인 큰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삭이 바보 같이 자기 결혼 문제를 위해 힘써 기도하지 않는 관계로 아버지 아브라함이 대신 나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정확했습니다. 결혼 문제에서 아들의 인생이 잘 될 것과 잘못될 것을 걱정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결혼이 인생의 중요한 문제이지만 약속의 땅을 떠날 만한 문제는 아닙니다. 여기에는 이미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브라함의 영적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혼 뿐 아니라 졸업과 취업과 군대 문제와 같이 산적한 문제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중요한 것들 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믿음을 떠날 만한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은 좋은 직장과 예쁜 아내를 얻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에 집중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합당한 결과가 뒤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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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사라가 127세까지 살고 죽었습니다.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자 아브라함이 사라를 위해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절차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지를 위해 어떻게 했습니까? 묘실을 얻기 위해 헷 족속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23:4).

  아브라함은 스스로를 나그네로 소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서 세상에서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그가 약속의 땅에 정착했으나 그곳에 있는 이방인 중의 하나와 같이 되지는 않고 역시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속한 자요 천국의 시민권자였습니다.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존경하여 자기들의 가족과 같이 맞아들였습니다. 자기 묘실들 중에 한 곳을 내어주겠다는 것은 곧 가족과 같이 자기들의 무덤 자리를 얻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한사코 사양하여 은 사백 세겔을 주고 그 땅을 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을 삼으로써 나중에 다른 말이 없도록 확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지만 그가 세상에서 빼앗고자 하지 않고 값을 주고 산 것은 세상의 물질을 양보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더 알리고자 하는 아브라함의 선한 행동입니다.

  기회가 있으면 조금이라도 세상의 것을 더 얻기 위해 양심도 속이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브라함은 당연히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값을 주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학원생은 가난하고 돈 나갈 데는 많아서 물질 문제에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다고 해서 약간씩 부당하게 얻는 것이 사실은 언약과 양심의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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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본문은 아브라함이 그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 앞에서 높임을 받은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신앙 생활이 한 번 성공을 거두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발전을 위한 도전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풀어야 하는 시험 문제는 너무 힘든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2:2).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말년에 얻은 아들이며 독자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신다는 표적이었으며,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이삭을 잃는 것은 아브라함에게는 개인적인 기쁨을 잃는 것이었고 한 아들을 잃는 것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껏 받으시던 제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것은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만들어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갈등하기 쉬웠고, 하나님의 음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22:3). 아브라함은 주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주님이 자기가 모르는 무슨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이라 확신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손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도 반대되는 행동인 것 같았으나 하나님이 자신이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하기 위해 아들을 향해 칼을 들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위해 준비하신 숫양을 발견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아신 후에 그에게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도 믿음으로 도전해서 얻었다 여겨지는 작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와 상관 없이 아끼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실 때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원하신 것은 제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는 그의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결단을 받으시고 일하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아낌 없이 결단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잘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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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브라함은 한 때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길 정도로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아비멜렉이 찾아와 아브라함을 칭찬하고 아브라함과 동맹 맺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연약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말씀으로 붙들어 주시고 그 언약을 지키신 결과입니다.

  아비멜렉이 그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왔습니다. 당시에 군대 장관은 나라에서 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에 아브라함에 대한 상당한 존경의 뜻을 전한 것입니다. 그가 와서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21:22). 이것은 한 지역의 수장인 아비멜렉이 나그네인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을 무시하기에는 그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너무 위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즉 너는 나와 내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21:23).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고자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자기 대적자가 되시는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비록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을 인지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에 맹세하였습니다.

  더불어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을 책망하였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지역은 사막과 가까운 곳이라 우물이 아주 중요했는데 아비멜렉의 종들이 인간적인 권세를 믿고 아브라함의 우물을 뺏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언약을 지키는 삶을 사느라 정당하게 받는 고난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았지만, 부당한 핍박에 대해서는 아비멜렉에게 말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는 자신이 모르는 일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여기서 언약을 세우고 그 지역을 이름하여 브엘세바라 했습니다. 브엘세바는 후에 이스라엘 영토의 남쪽 끝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평생에 얻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아내도 얻었고 아들도 얻었고 나름의 부도 얻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얻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전에는 연약하고 믿음이 없더니 지금은 강하여지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심을 이방인 사이에 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삶이 열매를 맺고 이삭 뿐만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목자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제가 눈에 보이는 역사로만 저의 신앙 생활의 영향력을 평가하려 한 것을 회개하고 먼저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삶을 바랍니다.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셔서 말씀을 전할 때 말씀이 심기게 하시고 저의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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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사라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100살의 노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들 부부에게 아들이 생길 수 있습니까? 본문은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표적이나 세상의 흐름을 믿기보다 여호와의 말씀을 믿으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아브라함이 자기를 믿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이 저를 통해 이루실 역사가 지체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세상 염려와 근심과 욕심과 고난에 쉽게 무너지는 약한 마음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다만 예수님의 피의 은혜에 의지하여 나아가야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라가 이제 늙고 지금까지 자식이 없었으니 아들이 계속하여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사라에게 약속대로 아들을 주시고 사라를 웃게 하셨습니다. 사라가 전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더니 지금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때문에 웃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잘 자라서 젖을 뗄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삭이 젖도 떼고 잘 걸어다니고 말도 곧잘 하는 나이가 되자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열 서너살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이 때 나이가 십대 후반의 청소년이었고 이삭은 아직 어린이집이나 다닐 어린 아이였습니다. 사라가 볼 때 이삭의 인격을 위해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이 안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21:10).

  이 말은 아브라함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이스마엘도 아들이고 이삭도 아들인데 한 명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스마엘이 이삭에게 죄를 범하고 있으므로 벌을 준다면 이스마엘이 받는 것이 옳기는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판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21:12). 하나님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라의 말을 듣고 이삭에게 언약이 있음을 확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라가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지 않고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낼 때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들은 것은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언약의 자녀 이삭을 위해 결정했을 때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이스마엘도 돌보셔서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아브라함을 광야로 내보내자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물이 없어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 샘물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첫째로 하나님과의 관계성 위에 바로 서야 하고 둘째로 서로 신뢰해야 합니다. 두 가지가 잘 이루어질 때 좋은 가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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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선지자라


  아브라함은 원래 살던 곳에서 옮겨 네게브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무슨 곤경을 겪었습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였다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가 미혼인 여자인줄 알고 자기 아내로 삼으려 데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를 거부했다가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고스란히 자기 아내를 뺏기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위기에서 어떻게 아브라함의 가정을 지키셨습니까?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아비멜렉이 그 동안 사라를 가까이 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위해 하나님이 아비멜렉을 막으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특별히 지켜 주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20:7).

  결과적으로 아비멜렉은 사라를 돌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라 아내를 뺏기면서도 아무 소리 못 했으나 하나님은 두려운 것이 없으시고 약속에 신실하시며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돌보아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부르셨고, 아브라함의 기도에 영적인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세움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없으면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도 평범한 겁쟁이 할아버지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세우심으로 인하여 그가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평범한 사람이요 남보다 나을 것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음으로 말미암아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축복의 통로로서 부르심 받은대로 살고 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제가 저의 평범함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대로 사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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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본문은 소돔과 고모라의 최후를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씀으로 들은대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두 천사를 소돔과 고모라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기도했던 대로 의인 열 명이 이 성중에 없어서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롯은 이 두 천사를 영접하여 초청하고자 했습니다. 나그네처럼 온 두 천사가 롯의 청을 사양하여도 롯은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롯은 아브라함과 같이 있을 때 배운 것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롯은 이로 인해 심판으로 인한 멸망을 면하였습니다. 본문을 볼 때 아브라함의 신앙적 영향력이 롯의 생명을 보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외부에서 나그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롯을 불러 말했습니다.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19:5).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은 롯이 영접한 나그네들을 끌어내어 성적인 탐욕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사람이 이와 같이 되면 잔인한 것이고 남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고 자신의 생명을 깎아먹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은 쾌락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생명을 돌보는 법을 몰랐고 심판을 피할 줄도 몰랐습니다.

  롯은 이들에게 어떻게 대항했습니까?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19:6-8). 롯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악한 일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선한 일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비합리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죄 없는 딸들을 사람들의 죄악의 도구로 내어주리라는 제안은 결코 정당한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은 폭도들의 손에서 롯을 구해내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여 이 위기를 벗어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롯의 많은 부족한 모습 중에서도 그가 약간의 선한 양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보시고 롯에게 심판을 면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19:12,13).

  롯은 이 말씀을 들을 때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만큼은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이 살리고자 했던 딸들의 약혼자들은 이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심판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은 세상의 분위기에 물든 사람들의 전형적인 반응입니다.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심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신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따라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항상 깨어있어 주님이 심판의 권세자이신 것을 경외하고 심판을 면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는 생각을 가져야겠습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깨워 성 밖으로 도망나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지체했습니다. 롯은 잠이 더 자고 싶었는지, 소돔과 고모라의 삶이 아쉬웠는지, 혹은 딸들을 위해 사위들을 설득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무엇을 위해서도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롯은 여기서 실격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롯을 살려서 성 밖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신 것입니다. 천사들은 롯과 가족들을 이끌어내어 놓고 말했습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9:17). 소돔과 고모라의 삶을 사모하여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지되었습니다. 들에 머물고 산에 가지 않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산까지 갈 시간이 없을 것을 염려하였고, 결국 소알 성에 정착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롯이 소알 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심판을 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롯이 소알에 들어가자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19:24). 롯의 가족은 심판을 면제받을 기회를 얻었으나, 그 중에 롯의 아내는 소돔을 그리워하여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살아남은 롯과 두 딸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두 딸은 아버지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 아들들로 말미암은 후손은 모압과 암몬 족속이 되어 이스라엘과는 결코 사이가 좋지 못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극히 타락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부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고 일부는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탛락하여 있으므로 모두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땅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발은 이 땅에 있더라도 성도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세상에서 구별되는 방법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소망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본문에서는 성적인 타락과 이웃에 대한 차별 등이 나옵니다. 그 외에 부와 명예에 대한 집착도 타락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외면하고 자기의 편안함과 만족만을 위해 사는 것도 소돔과 고모라로 가는 길입니다. 제가 죄의 길을 멀리하고 의의 길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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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아브라함이 영접했던 세 사람은 아브라함의 대접을 받고 일어나 소돔으로 향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행선지를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를 이루실 것이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역사의 동역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일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18:20,21).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 일은 소돔과 고모라를 정죄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유일한 권세로 죄악된 땅을 심판하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됩니다. 최근에 센터에서 요한계시록 본문을 중심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이 땅에 일어나는 일들을 볼 때마다 더욱 예수님을 생각하는 시각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 주님이 하실 일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고 확신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려주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아브라함을 역사의 동역자로 보신 것은 알겠는데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역사에 참여하는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감히 물었습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18:23-25). 아브라함은 죄악된 땅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적인 기도를 감당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와 같이 하여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저는 피조물인데 제가 무슨 수로 하나님께 유익을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저의 일을 통해 유익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저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고 특별히 중보적인 기도를 잘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갖게 하신 것은 제가 하나님과 역사와 이웃을 위해 기도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도를 감당하고 기도를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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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아브라함이 낮이 뜨거울 때에 장막 문에 앉아 있었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본문을 볼 때 하나님은 직접 찾아오신 것 같기도 하지만, 천사들 혹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들이 하나님 혹은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한 손님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뜨거울 때에 자신은 장막 문에 앉아 있고 나그네들은 뜨거운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고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 참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을 초청하여 쉼을 얻고 떡을 조금 대접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0). 이 약속은 하나님의 의지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돌아오시되 이 때에는 언약만이 아니라 언약의 성취를 들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볼 때 이 약속이 참 소망이 되지만 때로는 과연 이루어질 것인지 의심할 수 있습니다. 조건은 나아진 것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 섬기기에도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약속은 약속대로 있고 자신의 삶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일 때 하나님의 약속이 어디에 있는지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사라는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라는 자기 상식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었습니다. 자신이 여성의 생리가 이미 끊어졌으므로 임신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사라의 생각이 물론 합리적이고 논리적입니다. 하지만 사라의 생각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모든 것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로 논리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면 기도가 줄어들고 위축됩니다. 하나님께 맡긴 인생도 초라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능력이 많으시고 능하지 못한 일이 없으신 분인 것을 확실히 알면 하나님의 약속이 크고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제 인생이 창대한 인생인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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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아브람은 86세에 이스마엘을 얻고 지금 99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자기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가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큰 소망과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17:1,2).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17:4).

  이 말씀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모습과 그 소망이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의 지금 나이가 99세이지만 그에게 소망을 두시고 이루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완전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함을 사모하고 이를 향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을 두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이름이 창대한 복이 될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함입니다. 아브람이 잘나서가 아니고 아브람이 우연한 행운아라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언약대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에게 언약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17:5).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17:15,16). 더불어서 언약 백성의 징표로 할례를 받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17:17,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보다 자기 나이와 아내의 나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많이 도우셨지만 그것도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가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이 처한 상황과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조화입니다.

  자신의 상식에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판단될 때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를 판단하는 사람이 되고 한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곧 무기력해지고 옛 열정을 잃어버리고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이 식습니다. 세상적인 사람이 되고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옛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다시 불신을 부르고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삶에 힘쓰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때라도 하나님은 언약을 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때는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듣고 웃을 정도로 믿음이 약해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언약을 믿는 믿음을 다시 확실히 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17:19).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바라보았으나 하나님은 이삭을 바라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때를 자기 마음대로 13년을 당기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가정에 분란만 가져왔던 과거가 있습니다. 이스마엘에게도 많은 축복이 약속되었으나 그는 영원한 언약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이삭을 주시고 그 언약을 이삭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벗어난 사람의 노력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데에 아무런 좋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언약 밖에서 이루어진 일은 언약 밖의 일일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상황과 조건을 생각하고 웃을 때에 하나님은 변함 없이 약속의 말씀을 주심으로 아브라함을 도우셨습니다. 이것은 답답한 것이 아닙니다. 고지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변함이 없기 때문에 들리는 말씀도 당연히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징표를 새롭게 하기 위해 말씀대로 자기와 이스마엘을 포함하여 집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믿음이 약해질 때에도 변함 없는 언약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믿음이 좋을 때도 있지만 안 좋을 때도 있습니다. 세상 근심과 염려가 있으면 자연히 불신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에라도 하나님의 언약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도록 부르셨고 한 사람의 목자가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자기 인생의 작은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장래 방향과 관련해서든지 현재 상황에서든지 조건이 안 좋게 보이는 때라도 변함 없는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해서 동일한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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