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Ephesians 5:9)

원천UBF 김성진.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야곱이 죽자 요셉은 그가 할 수 있는 대로의 예절을 갖추어 야곱을 장사지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야곱을 애굽이 아닌 가나안에 장사하고자 하여 바로의 허락을 받고 가족의 전통대로 가나안에 장사하였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 모두가 약속의 땅에서 살리라는 신앙고백의 실천이었습니다.

  야곱이 죽자 야곱의 아들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요셉의 형들이 갑자기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한 번 지은 죄가 사람을 얼마나 오랫동안 괴롭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형들은 이미 용서되었고 영접되었는데도 죄를 잊지 못하고 그 영향력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이상한 모습이 아니라 모든 죄인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어떻게 안심시켰습니까?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언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19-21). 요셉은 인간적인 감정을 부인하고 형들이 받은 용서를 확인하여 주었습니다. 요셉이 이와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형들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형들은 악을 행한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에게 선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온 것과 고난 받은 것에 대해서 형들은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판결을 기다리는 자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 안에서 형들이 용서 받는다면 같은 천국 백성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심판받을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의 용서와 분노가 의미가 없고, 다만 용서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 상처 준 사람은 용서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발견하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관대해져서가 아니라 형벌과 면제가 하나님께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만큼 예수님을 닮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평가를 맡기는 사람, 그리하여서 요동하지 않고 잔잔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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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본문은 야곱이 자기 아들 열 두 명에게 합당한 예언을 주는 것을 기록합니다. 야곱의 아들들 중 첫째는 르우벤이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은 장자의 축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자기 아버지의 침상에 올랐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르우벤이 빌하와 간통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큰 실수 한 번이 르우벤을 장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르우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 안에서의 지위는 잃어버린 것입니다.

  야곱의 두 번째 아들은 시므온이고 세 번째 아들은 레위입니다. 르우벤이 아니라면 시므온, 시므온이 아니라면 레위가 받아야 마땅할 장자의 축복은 그들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불필요하고 거친 폭력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지금까지 그 폭력성을 회개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야곱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을 가리켜 그들이 축복 받기에 합당하지 못한 점을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49:5).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49:6).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은 유다입니다. 그는 며느리와 간통한 자로서 르우벤보다 그 지은 죄가 크게 가볍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 동생이 위기에 빠졌을 때 살리고자 하는 생각보다 적당히 처리하고자 하는 생각이 앞서서 애굽에 팔아버렸으니 살인자 시므온과 레위보다 크게 낫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를 어떻게 축복하였습니까?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49:8). 이것은 유다가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한 것입니다. 유다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큰 형의 지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야곱이 없을 때는 유다가 아버지의 책임과 권세를 지닙니다. 야곱은 유다를 가장 신뢰하였고 자기 집을 맡긴 것입니다. 교회로 볼 때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49:9,10). 유다는 사자와 같아서 패배를 모르고 남에게 정복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의 권세가 유다와 항상 함께할 것이고 모든 백성이 유다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유다는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왕의 지위를 보장받았습니다. 이 축복으로 인하여 유다 지파에서 다윗 왕이 나오고 유다의 열왕과 포로후기의 지도자들과 또 그리스도께서 나오셨습니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49:11,12). 보통 나귀를 어디에 맵니까? 죽은 나무 밑둥에 매거나 싸구려 기둥에 묶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축복이 넘쳐서 과실이 나는 아름다운 포도나무의 과실을 포기하고 나귀 매는 데에 쓸 정도가 될 것입니다. 또 그의 포도밭 소산이 너무나 많아서 포도주와 포도즙을 빨래하는 데에 써도 될 정도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포도주와 우유가 그가 받은 축복을 상징합니다. 유다는 분명히 물질적 축복의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이러한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형들보다 뛰어난 위업을 이루어서도 아니고 죄를 덜 지어서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유다가 회개를 하고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과거에는 여러 죄를 지었으나 나중에는 회개하고 야곱과 베냐민을 위하여 희생하고자 하는 내면까지 같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악행은 사라지지 않지만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은 죄를 씻은 듯이 잊고 죄 사함을 주십니다. 야곱도 변화된 유다의 모습을 보고 성령의 역사를 깨달았습니다. 유다는 모든 죄인이 본받아야 할 표본이 되었습니다. 그는 완벽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축복하시기에 기뻐하는 회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가 각각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이며 특별히 축복한 아들입니다. 요셉은 그 가지가 담을 넘은 샘 곁의 가지로 비유되었습니다. 대적자에게 무너지지 않는 힘을 가졌고 하나님이 요셉을 도우실 것입니다. 하늘의 복과 생활과 생산의 복을 받았습니다. 베냐민은 형제들 중에서 가장 어린 자였지만 싸움에서 승리할 축복을 얻었습니다.

  야곱의 축복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들은 축복해주고 미원하는 아들들은 저주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을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분량이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기준에서 사는 사람은 분량이 자기 그릇만 하고 성령의 기준에서 사는 사람은 분량이 성령이주시는 만큼 커집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세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임하고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에게는 적게 임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기까지 하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축복 대신에 그 죄 안에서 계속해서 거하는 벌과 최후의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축복의 기준이 믿음의 분량에 있는 것을 알고 이것을 키우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적 기준에 의해서 살기 쉬운데 영적인 기준에 의해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보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고 때로는 영적인 지식을 배우기 위한 통로 정도는 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시각을 가져야 영적으로 온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제가 믿음의 분량을 크게 가지도록 믿음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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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본문은 요셉의 두 아들이 야곱의 축복을 받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가 목숨을 부지한지 십칠 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늙어서 애굽에 갔지만 지금은 더 늙어 147세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도 얼마 안 가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자 가족의 생명의 은인이며 세계를 구원하는 데 쓰임 받은 사람 요셉을 불렀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부탁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풍요로운 땅 애굽에서 장사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약속의 땅에서 장사되기를 원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장사하는 장소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데에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야곱은 남은 자기 자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더 기억하는 데에 이것이 도움이 될 것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의 역사와 가정의 역사는 단지 지난 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성공과 실패의 교훈입니다.

  요셉은 그리고 야곱에게 자기의 두 아들을 데리고 나아갔습니다. 장자는 므낫세이고 차자는 에브라임입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많은 재산이나 큰 권력을 물려주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축복을 원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야곱의 축복과 함께 하실 것이었기 때문에 요셉은 소중한 두 아들을 야곱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야곱은 먼저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손자일 뿐만 아니라 아들, 즉 양자로도 영접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가나안에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지파가 요셉 지파로 한 분깃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분깃을 따로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므낫세가 장자이지만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에브라임에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인재들이 많이 나온 배경입니다.

  이를 볼 때 제가 받고자 해야 하는 것, 제가 주고자 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복보다는 하나님의 축복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축복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재물과 권력과 명예, 이런 것들이 있는데 학생으로서 실제적으로 평소에 욕심내는 것은 좋은 성적이나 논문 완성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지면 따라서 오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축복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손에 넣기 위해 애써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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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흉년이 5년이 계속되고 6년 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알리신 대로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애굽이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었지만 여기에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이전 7년의 풍년에 많은 곡식을 거두어 들였던 요셉의 곳간에만 양식이 있었습니다. 애굽 백성이 요셉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47:15). 그러자 요셉은 그들이 모든 가축을 가져와서 한 해 양식과 바꿔주게 했습니다. 애굽 백성들은 가축을 유지할 곡물이나 풀이 없어서 일년 동안 그 가축으로는 살 수 없었는데 요셉이 일년을 살게 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7년 째가 되자 그 곡식마저 다 떨어졌습니다. 이제 애굽 백성은 아무 것도 내어서 곡식을 살 수 없으니 꼼짝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제안을 했습니까?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서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47:18,19). 요셉은 그들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이어져 애굽의 토지법이 되었습니다. 애굽 백성은 이제 법적으로 매년 생산물의 5분의 1을 세금으로 내고 5분의 4를 갖게 되었습니다. 애굽 백성은 바로의 노예가 되었고 토지도 바로의 것인데 그대로 5분의 4의 생산물을 갖게 된 것은 은혜로 된 것입니다. 자기 능력이 자기의 것이 아니고 자기가 가진 것도 자기의 것이 아닌데 이것을 누리는 것은 전적으로 주인 된 자의 은혜입니다. 요셉은 이러한 은혜를 베풂으로써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요셉은 사명을 수행하는 성실한 청지기였습니다. 그가 7년 간의 풍년 가운데 교만해지지 않고 다가올 7년의 흉년을 기억하며 양식을 확실하게 저장하였습니다. 또 흉년 때에 곡식을 팔아 나누어줄 때 풍년의 풍부함에 젖어서 양식을 낭비하지 않고 7년간 쓸 수 있도록 잘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때 애굽과 가나안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 들여 애굽의 총리로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마지막에는 양식을 살 돈이 없는 애굽 백성에게 은혜로 생명의 양식을 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실천하였습니다.

  저도 요셉과 같은 성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맡은 일도 열심히 하고 주님 역사에서 맡은 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아주대 캠퍼스에서 허락되는 대로 말씀을 전하기 위해 땅을 밟는 것은 중요한 사명입니다. 당장 열매가 없고 열매의 가능성도 그렇게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요셉은 노예와 죄수의 신분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한 것을 볼 때 제가 인간적인 시각을 가지고 사명 섬기기를 게을리 하는 것은 영적으로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공부를 할 때에도 주님이 맡기신 일인 것을 영접하고 영적인 투쟁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훈련이 되고 또 언젠가 쓰임 받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요셉과 같이 맡은 일을 지혜롭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좋은 청지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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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야곱과 온 가족은 요셉의 도움으로 바로의 초청을 받아 애굽에 오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친히 바로의 호의를 얻어 가족들이 고센 땅에 살도록 했습니다. 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관직을 얻어 바로의 가축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바로는 야곱에게 주목했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바로의 앞에 보이자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을 했습니다.

  야곱의 행동은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복을 많이 얻은 것 같아 보이는 바로에게 초라한 늙은이가 축복을 하기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야곱이 복을 많이 받아 부를 이루고 자식도 많이 가졌지만 바로 앞에서 이런 것들은 평범한 서민의 삶입니다. 바로가 보기에 이것은 축복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가 가진 애굽의 비옥한 토지와 많은 백성과 많은 재물과 큰 권력이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어떻게 바로에게 구걸이 아니라 축복을 할 수 있습니까? 야곱은 세상 권세자를 하나님과 확실히 구분하였습니다. 그가 과거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씨름하였으나 오늘 바로 앞에서는 그를 붙들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나누어 주고자 한 것입니다. 바로가 세상에서 큰 자라 하여 그가 축복이 필요 없다고 여긴 것이 아니고 바로가 이방인이라고 하여 그에게 축복을 줄 수 없다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복을 바로에게도 빌어 주었습니다.

  야곱의 축복에 대한 시각이 참 영적이고 놀랍습니다. 이러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좋은 성적뿐만이 아니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나 좋은 논문을 쓰는 것만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아니고 권력이나 명예를 많이 얻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요셉이 복을 받아 이룬 일은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 모든 일에 형통한 것입니다. 곧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체험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축복을 나누어주고자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캠퍼스에는 마음이 높아 복음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또 부유해 보여 하나님의 축복이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죄 사함을 받지 못했다면 그들이 가진 세상의 복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난 예수님의 제자요 부활의 증인으로서 제가 가진 복음의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다. 목자는 양들에 비해 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제가 가진 것을 양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도록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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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야곱은 요셉이 살아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의외의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유익을 줄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첫째로 오랜만에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 있었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니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만나보고 싶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애굽으로 가면 가나안에서 굶고 있는 모든 식솔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야곱으로서는 언약 백성을 죽게 놔둘 수 없었고 또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막길을 걸어 애굽까지 갔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어떻게 합니까? 눈으로 보이는 모든 표적이 애굽을 향할지라도 영적인 확신이 없이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의 남쪽 경계인 브엘세바에 이르렀을 때 야곱은 광야를 앞두고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영적인 확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46:3,4). 이에 야곱은 마침내 애굽으로 가 요셉을 만났습니다.

  야곱의 신중한 태도가 모범이 됩니다. 제가 죄가 많고 분별력이 없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못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없이 저의 생각과 저의 지각과 저의 느낌대로 행하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기도하고 인도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저는 대학원에 올 때 영적인 확신을 얻기까지 기도하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모든 일에 기도로 도전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양을 얻어 섬기고 장래 방향도 기도로 문을 열어야 합니다. 제가 기도의 용사가 되고 교만한 사람이 아니라 신중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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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은 유다의 말을 듣고 결국 큰 소리로 울고 말았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더 큰 목적을 위하여 인간적인 감정을 참았으나 이제 유다가 변화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고 또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 감격을 참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형들에게 자기를 알리기 합당한 때가 와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형들 입장에서 이것이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의 친 동생이 애굽의 총리라니! 그런데 그 동생은 자기들이 오래 전에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린 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놀란 형들을 어떻게 위로했습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5). 요셉은 형들을 미워하고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수와 용서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수 방법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습니다. 형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요셉의 꿈을 부정하기 위해 그를 죽이고자 꾀하고 또 애굽에 노예로 팔기까지 했으나 결국 요셉을 통해서 야곱의 집과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외적 환경의 측면에서 요셉은 형들 때문에 고생을 죽도록 한 것 같지만 이제 보니 그동안 요셉이 합당한 훈련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크게 참여한 것입니다.

  지금 처한 상황이 인간적으로 볼 때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모두 거룩한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물질이 없는 것은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장래가 불확실한 것은 물 위를 걷는 믿음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현재 자기 실력이 없어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망하게 합니다. 제가 불리해 보이는 상황을 볼 때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전적으로 기대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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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요셉은 여러 가지 목적으로 베냐민의 짐에 자기의 물건을 넣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 형제를 도둑으로 몰아 형들의 반응을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럼으로써 형들의 현재의 영적 상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형들이 베냐민을 어떻게 여기는지도 볼 수 있었고,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 마음이 깨져서 형들이 회개하고 올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요셉의 집을 나선 형들에게 요셉의 청지기가 가서 그들을 도둑으로 몰았습니다. 형들은 당연히 도둑질을 하지 않았기에 극구 부인했습니다. 만약 요셉이 일어버린 물건이 그들에게서 발견되면 그는 누구든지 요셉의 종이 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완전히 의외로 베냐민의 짐에서 애굽 총리가 잃어버린 물건이 발견되었습니다. 형들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철 없는 베냐민이 애굽 총리의 물건이 비싸보이고 탐이 나서 진짜로 훔쳤다고 여겼을 것 같습니다. 이제 베냐민은 애굽에서 종이 되고 형들은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야곱과 라헬의 두 아들은 모두 종이 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에 유다가 의외의 일을 행하였습니다. 유다는 자기 집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베냐민을 잃게 되면 자기 아버지 야곱에게 미칠 슬픔을 걱정하였습니다. 유다는 또한 자기가 아버지와 한 약속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스스로 죄인의 벌을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이 유다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베냐민이 잘못하여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버지와 약속한 것을 넘어섰으니 난 책임질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유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베냐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기 양들을 지키고자 하시고 목숨이라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유다와 같이 저도 예수님을 닮아 맡은 일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명은 이런 때에는 지키고 저런 때에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incomplete contract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완전한 약속 앞에서 완전하게 행해야 합니다. 제가 이러한 것을 잘 못하고 쉬는 것과 게을러지는 것에 대해 타협하고 깨어있지 않은 적이 많습니다. 회개하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과 한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찌하든지 지키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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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야곱의 입장을 생각해볼 때 갈등이 참 많이 됩니다. 이미 요셉을 잃었고 라헬의 아들은 베냐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냐민을 안전하게 지키자니 가족의 생계가 위험합니다.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으면 애굽의 총리가 곡식을 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되면 애굽에 있는 시므온을 구출해올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유다는 이 때에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43:8). 유다는 베냐민을 잃기 싫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베냐민에 대한 감정에 휩싸여 가족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보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탓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기가 담보가 되어 베냐민의 생명에 대해 아버지가 마음을 놓도록 도왔습니다. 유다의 모습에서 회개한 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가 과거에 요셉을 파는 데에 앞장섰으나 지금은 가족을 구원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자기가 손해륿고 자기를 담보로 삼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성도도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주님의 구원역사에 참여할 때 이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유다가 노력한 결과 야곱도 마음을 돌렸습니다. 잃게 되면 잃겠다며 베냐민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온 가족을 돌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베냐민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랬을 때 야곱의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열한 형제가 애굽으로 가 요셉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자 주 안에서 한 가족인 사람들을 위해 자기가 나서서 무언가 맡아서 하고자 하는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유다가 큰 죄인이지만 결국에는 찬송이 되고 회개의 표본이 되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중요한 그릇이 된 데에는 그의 이러한 태도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나서서 하겠지. 굳이 내가 나서서 손해 볼 필요가 없어.' 하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서는 누군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가 손해 보게 두시지 않고 가장 잘 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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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온 땅에 기근이 든 그 때에 야곱이 살고 있는 가나안에도 기근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아브라함은 기근을 만나자 애굽으로 도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떠나자 풍족한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잃을 위기가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땅을 떠나기보다 애굽의 양식만 취하고자 하였습니다. 중심을 온전히 하나님과의 언약 가운데에 두면서 세상의 유익을 취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제외한 열 명의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었습니다. 장정 열명이 갔으면 곡식을 많이 싣고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애굽으로 가 총리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총리가 자기들이 노예로 팔았던 요셉인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러나 이 열명을 볼 때 자기들의 형들인 것을 금방 알았습니다. 요셉은 여기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생각했습니다.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한 것, 그리고 지금 곡식을 팔아 형들과 가족들과 언약 백성을 구원하는 데 쓰임받는 자신을 바라볼 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절하는 꿈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가족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물질적 고난을 해결해 주어야 했고, 동시에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일에 대해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에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먼저 형들을 간첩으로 몰아보았습니다. 형들은 억울하였기에 총리의 의심을 부인하였습니다. 요셉은 여기서 그들의 가족관계를 묻고, 아직 베냐민이 무사하고 아버지가 살아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베냐민을 눈으로 보고자, 또 형제들을 한 곳에 모으고자 하여 수를 써서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 베냐민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여기서 요셉이 보고자 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42:16). 요셉은 형들 가운데에 거짓됨이 가득한 것을 항상 보아 왔습니다.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그들은 부지런하지 못했습니다. 큰 형 르우벤은 아버지의 아내와 간통하였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이방인을 속여 살육을 행했습니다. 무엇보다 형들은 자기들을 노예로 팔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요셉 앞에서 형들은 자기 동생 요셉이 없어졌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들 사이에서 요셉은 진실함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진실함은 후일에 사도가 빛의 열매의 바탕되는 것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죄악된 형들 사이에서 요셉은 빛의 열매가 있나 보려고 한 것입니다. 형들을 향한 요셉의 영적인 소망이 목자로서 배워야 할 점입니다. 제가 섬겨야 하는 양들 사이에 진실함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속을 알 수 없고 속이는 것이 보이고 감추는 것이 보입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고 저라고 해서 크게 나은 것이 없는데 그러나 그들을 양으로 여기고 섬기고자 하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인간적으로는 형들이요 또 원수요 또 열명이나 되는 그들을 영적으로 돕고자 하였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형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 아니고,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구원 역사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태도를 보고 배워야 합니다.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돕고자 하는 소원이 있고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캠퍼스 양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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