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의 첫 모습들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마귀의 시험을 광야에서 이기신 후에 비로소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일 하기에 급급한 우리 사람들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교회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루신 일을 인정해야지 필요한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겸손하게 하나님을 앞서나가지 않으시고 순서대로 일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 작은 일들이 위대한 구속역사의 중심이었습니다.
요한은 권력자의 부정을 규탄하다 체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소식을 듣고 갈릴리로 물러나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야곱의 아들들 중에 있었지만 나중에 북이스라엘에 포함되어 신앙의 순수성을 많이 잃었고, 예수님 시대에도 정통 유대주의적 문화에서 가장 먼 유대 땅이었습니다. 가장 말씀과 가까우신 분이 가장 말씀과 먼 지역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4:14-16). 사도는 예수님을 만난 영감으로 선지자의 말씀을 다시 보았을 때 선지자의 말씀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스불론, 납달리, 요단 강 저편, 갈릴리는 모두 유대인들이 무시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들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에게 주신 빛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주신 빛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4:17). 예수님은 회개와 천국의 빛을 주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로, 아무 고통도 없이 영원한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시기와 미움이 없고 사람들 간의 다툼이 없으며 갈등이 없고 죽음의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수만 명이 모이는 대 부흥 집회를 여신 것이 아니고 열두 명의 제자들을 모으시고 그들을 집중적으로 도우셨습니다. 본문에서는 그 중에서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4:18).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부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달랐습니까?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배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4:21). 역시 어부였습니다.
어촌이었기 때문에 어부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말씀을 전할 만한 권세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어부들을 부르셨습니까? 어부는 신학대학원을 나와서 다른 교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도 아니고 돈이 많이 헌금을 많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성이 뛰어나서 말씀을 잘 이해하기를 하겠습니까? 감성이 풍부해서 말씀 앞에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겠습니까? 거친 어부의 삶은 신앙과 잘 안 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평범한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와 요단 저편과 갈릴리는 단지 지역적인 면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은 빛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이 사람들을 부르신 것을 볼 때에 누구에게라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부들에게 소망을 두시고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4:19). 이 말을 들은 어부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베드로와 안드레는 바다에 던지던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기우던 그물 뿐만 아니라 배도 버리고 같이 일 하던 아버지를 뒤에 남겨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어부라 그물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낚는 삶을 살 때에 매일같이 그물을 던져도 늘 피곤하였습니다. 죽지 못해 일 하는 삶에 지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소망을 영접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물이 없어도 주님이 주시는 만나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셨습니다. 거기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이 가르치신 곳은 갈릴리 작은 동네였으나 온 수리아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모든 병자가 찾아왔습니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까지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사실에 크게 주목합니다. 말씀을 가르치신 것도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백성 중에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것도 치료의 광선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천국 복음을 얻도록 하시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천국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진 승리의 소식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승리가 이루어졌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펼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 복음은 멸시 받는 스불론과 납달리 땅을 갑자기 부자 동네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못 사는 동네에 특목고나 자사고가 생겨서 인기를 끄는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대를 압제하는 로마를 무너뜨리는 군대를 조직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참 작아보이고 소시민적인 일 같아 보입니다. 뭔가 더 큰 일, 뭔가 더 사회에 참여하는 일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 뿐입니다.
제가 일용할 양식 말씀을 묵상하고 매주 소감을 쓰고 또 전도를 하는 것은 작은 일로 보입니다. 실제로 무슨 큰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저에게 원하시는 것은 먼저 제가 천국 복음을 잘 알고 또 전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아 보이지만 오히려 큰 일이고, 세계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급하여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고 실망하기 쉽지만, 하나님이 저의 죄를 오래 참으시는 것을 생각하면 제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순종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제가 당장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일, 또 센터에서의 눈에 보이는 역사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주님이 이루시는 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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